대여금 소송의 구조와 피고의 항변 수단으로서의 상계
금전거래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민사소송 유형 중 하나는 대여금 청구 소송입니다. 이는 채권자인 원고가 돈을 빌려준 후 갚지 않은 채무자인 피고를 상대로 원금 및 이자 등을 청구하는 소송으로, 계약서나 차용증, 계좌이체 내역 등이 입증자료로 활용됩니다.
이러한 대여금 소송에서 피고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항변을 시도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전략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계’ 주장입니다. 상계는 피고가 원고에게도 별도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두 채권을 맞물려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적절히 활용된다면 대여금 지급 책임 자체를 일부 또는 전부 면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상계의 개념 및 법적 근거
상계(相計)란 서로에게 채권·채무가 있을 때 이를 서로 상쇄하여 채무를 소멸시키는 제도입니다. 민법 제492조에서 제494조까지의 규정이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즉, 피고는 “나는 원고에게 돈을 빌려 쓴 채무가 있지만, 동시에 원고도 내게 지급하지 않은 금전채무가 있으므로 양 채무를 맞춰 상계하고 잔액만 책임지겠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상계는 민법상 제도이지만, 소송 과정에서는 명확한 요건을 충족해야만 인정됩니다. 따라서 단순한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며, 법적 요건과 입증 책임이 따릅니다.
상계가 인정되기 위한 4가지 법적 요건
1. 쌍방이 서로 금전채권 또는 동일종 채권을 보유할 것
상계를 위해서는 원고와 피고가 서로에게 금전 또는 대체물·유가증권과 같이 동일한 종류의 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원고는 금전 대여금, 피고는 공사대금 채권을 가진 경우 금전의 형태로 동일하여 상계 요건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2. 쌍방 채권 모두 변제기가 도래했을 것
상계는 각 채권이 모두 변제기(지급기일)를 지난 경우에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변제기가 오지 않은 채권은 상계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3. 상계할 수 없는 채권이 아닐 것
민법 제493조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상계가 제한됩니다:
- 채권의 성질상 상계할 수 없는 경우 (예: 부양료)
- 채무자가 고의로 취득한 채권일 경우 (채권 회피를 목적으로)
- 법률 또는 계약에 따라 상계를 금지한 경우
4. 자동채권이 확정되어 있을 것
피고가 주장하는 채권(자동채권)이 소송상 존재와 범위가 확정되어 있어야 상계 가능합니다. 아직 존재 여부가 불명확하거나 금액이 미확정인 채권은 상계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상계의 성립 시기: 상계적상
상계의 성립 요건 중 중요한 개념은 바로 ‘상계적상’입니다. 이는 상계가 법적으로 가능해지는 시점, 즉 쌍방 채권이 모두 상계 가능한 상태가 되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법원은 상계적상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상계를 주장한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시기상조의 상계”로 판단해 기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피고의 채권이 발생 예정 채권일 경우, 그 불확정성 때문에 상계 주장 자체가 무산될 수 있습니다.
실무상 주의사항 및 상계의 실질적 의미
상계는 법적으로 인정되면 대여금 채무를 상쇄시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항변입니다. 하지만 상계 주장에는 엄격한 요건과 명확한 입증이 요구됩니다.
특히 피고가 원고에게 채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채권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며 변제기가 도래하고 법적으로 상계 가능하다는 점까지 소명해야 법원이 받아들입니다.
실무 팁: 피고는 답변서나 준비서면에서 상계를 주장할 때, 반드시 자동채권의 내용, 발생 경위, 변제기 도래 사실, 법적 성격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입증자료를 첨부해야 합니다.
법원이 상계 주장을 인정하는 실제 사례
상계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자동채권의 존재 및 적법성에 대한 확실한 입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실무상 많은 판례에서 상계 주장을 인정받기 위한 조건들이 판시되어 왔으며, 그중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실질적인 요건이 무엇인지 보다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피고가 원고에게 대여금 1,000만 원을 상환해야 하는 소송에서, 피고가 “과거 원고가 본인에게 지급하지 않은 용역대금 1,200만 원이 있다”며 상계를 주장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때 피고는 세금계산서, 송금요구 이메일, 실제 작업 내역서 등을 제출했고, 법원은 이를 토대로 상계를 전부 인정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상계 주장이 인정된 사례의 공통점은 채권 존재의 입증력과 상계적상 도달 시점의 명확성에 있습니다.
상계 주장이 배척된 대표 사례와 그 이유
반면 상계가 기각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그 사유는 대체로 일정한 유형으로 반복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채권 소멸시효 완성
민법상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입니다. 상계 주장 당시 피고의 자동채권이 시효를 초과했다면, 상계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법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권리로서 행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상계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2. 피고의 채권이 불확정하거나 입증이 부족한 경우
자동채권이 명확하지 않거나,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 법원은 상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원고가 나에게 돈을 갚기로 했었다”는 주장만 있고 서면계약이나 입금 요청 등 입증자료가 없다면, 상계 주장은 기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3. 상계 제한사유에 해당
민법 제493조에 따라 상계 금지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상계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채무자가 일부러 피상대방에게 채권을 가지게 된 경우(예: 사해행위적 채권양수), 또는 본래 상계할 수 없는 성격의 채권인 경우 등이 해당됩니다.
실무상 실패하기 쉬운 상계 주장 유형
상계는 형식적으로는 간단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소송에서 실효성 있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고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실수로 상계 주장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소장이나 답변서에서 상계를 간략히 언급한 채 증거가 누락된 경우
- 상계 사유가 되는 채권의 변제기 도래 여부나 금액이 불확실한 경우
- 피고의 채권과 원고의 채권이 서로 다른 종류의 채권일 경우 (예: 물품 인도 채무 vs 금전채무)
- 피고 채권의 존재에 대해 원고가 명백히 다투는 사안임에도 이를 입증할 준비가 부족한 경우
현명한 상계 전략: 단순히 ‘나도 받을 돈이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동채권의 존부, 범위, 기일, 성격까지 포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상계 주장 시 입증 책임의 귀속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8다248909 등)는 상계를 주장하는 자가 자동채권의 존부와 요건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피고가 상계를 주장한다면, 그 주장에 따르는 모든 요건사실—예컨대 채권의 성립 시점, 변제기 도래, 동일성 여부 등—을 입증해야 합니다.
특히 실무에서는 상계 항변은 적극적 항변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입증 실패 시 자동으로 청구가 인용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피고의 상계 주장을 효과적으로 구성하는 전략
상계 주장을 실질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주장 수준을 넘어 체계적인 논리 전개와 구체적 자료 제시가 필요합니다. 다음과 같은 전략을 고려해보세요.
- 자동채권의 존재와 내용을 명확히 설명 (계약서, 세금계산서, 거래명세서 등 첨부)
- 채권 발생의 시점과 경위를 연도별로 정리하여 진술
- 변제기가 도래하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날짜 명시
- 계산의 기초가 되는 근거자료는 항목별로 구분하여 제시
- 상계에 대한 법적 근거와 요건 충족 여부를 각 항목별로 구조화하여 설명
상계 항변은 단순한 반박이 아니라 ‘소멸적 항변’입니다. 따라서 판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전문적인 법률 지식과 실무 감각을 동원하여 대응해야 합니다.
채권자 입장에서 상계 주장을 무력화하는 대응 전략
원고가 채권자인 경우, 피고의 상계 주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전액 승소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상계 주장을 분석하고 대응 논리를 구성해야 합니다.
1. 피고 채권의 존재 여부 자체를 다툰다
자동채권이 실재하지 않거나 이미 소멸했거나 불확정 상태라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계약의 부존재, 거래 미이행, 시효 완성 등을 근거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2. 상계 요건의 누락 여부를 확인
변제기 미도래, 상계금지채권, 이의보류 등 상계 요건 중 빠진 부분이 있다면 해당 점을 지적하여 상계 무효를 주장합니다.
3. 입증 부족 또는 논리적 결함 지적
피고의 주장 중 명확한 증빙자료가 빠져 있거나, 수치 계산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 오류를 근거로 상계를 배척하도록 유도합니다.
준비서면, 소장 등 문서 작성 시 유의사항
소송 서면상에서 상계를 언급하거나 대응하는 경우, 문장 표현의 명확성과 구성 논리의 일관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형식과 구조를 갖추는 것이 실무적으로 효과적입니다.
- 사실관계 → 법적 쟁점 → 결론의 구조 유지
- 금액 관련 내용은 반드시 숫자와 한글 병기 (예: 1,000,000원(일백만원))
- 입증자료에 번호 붙이기 (예: 갑 제1호증, 을 제2호증 등)
- 상계 요건 4가지를 각각 소제목으로 나누어 기술
실무 팁: 소장에는 상계 주장을 하지 않더라도, 피고의 예상 항변을 반영해 ‘예비적 주장’이나 ‘반박 대비자료’를 함께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상계 관련 양식 예시와 실무 적용
1. 상계 항변 예시 (답변서)
“피고는 원고에게 ○○원의 대여금 채무가 있으나, 원고는 피고에게 20○○년 ○월경부터 현재까지 합계 ○○원의 용역대금 채무가 있으므로, 피고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채권에 대하여 위 용역대금 채권을 상계함을 주장하며, 상계로 인하여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되어야 합니다.”
2. 준비서면 구성
- 제1항: 자동채권의 존재 및 내용
- 제2항: 쌍방 채권의 동일성과 종류
- 제3항: 상계 적상 시점
- 제4항: 상계 제한 사유의 부존재
정리 및 실무 조언
대여금 소송에서 상계 주장은 법리와 사실을 모두 아우르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단순한 주장이나 ‘기억에 의한 추정’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우며, 구체적 증빙자료와 법적 요건 분석을 병행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원고든 피고든 상계 문제는 단순히 법정에서의 공방을 넘어서, 사전에 문서화된 자료 준비와 구조적인 서면 설계가 필요합니다. 민사소송의 성공은 결국 ‘준비된 자’의 몫입니다.
실무적으로는 민사조정, 화해권고결정 등 법원을 통한 분쟁 조정 기회도 적극 활용하여, 상계 이슈가 심리적 대립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